분석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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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면 분석심리학을 알게 되실 겁니다. 분석심리학이 궁금하신 분들은 모두 읽어주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분석심리학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분석심리학
날씨 탓인지 나이 탓인지 유난히 춥고 쓸쓸한 귀갓길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동네 이웃이 나를 알아보고 차를 태워줍니다. 지난밤 꿈에 나왔던 어느 마을의 낯선 건물 문양이 오늘 제가 갔던 카페 간판에 그려져 있습니다. 안부가 궁금하던 오랜 친구가 내 생각이 났다며 전화를 걸어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부딪혀 도대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막막할 때 제가 오롯이 원하던 세상으로 나를 안내하는 계기가 열립니다. 꿈꾸던 어떤 것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는 일은 우리에게 늘 일어났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딱 맞는 시점에 보드게임의 말들을 바꿔놓는 것처럼 무의식의 바람은 언제나 준비된 손길을 만나게 합니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1875~1961)은 우리 안에는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전 세대들이 축적해놓은 정서적 유산이 내재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의식은 집단의 유산이 깃들어 있는 공간이며 우리가 그 공동의 유산으로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의식을 하나의 잠재적 자원으로 바라본 융은 의식의 힘보다 더 근원적인 원천으로 무의식을 주장한 프로이트의 관점에 동의했으나, 성적 에너지를 강조하는 리비도 이론에는 점차 반대하게 됩니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은 억압된 에너지가 축적된 공간으로 증상의 원천이라면, 융에게 무의식이란 우리 현실 모습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융은 우리의 현재는 늘 꿈꿔온 우리 자신의 무의식이 실현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융과 프로이트는 한때 공통의 관심사를 연구하며 오랜 기간 개인의 일상을 세세한 서신으로 주고받을 만큼 매우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관념의 지형을 세상에 공표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내면 동기에 주목한 융에게도 역시 큰 공감을 일으킨 고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융은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이 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에 반대했습니다. 융은 모든 무의식의 문제를 성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리비도를 성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정신을 포함한 생의 전반적 에너지라고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생리학에 근원을 둔 의사로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바라봤기에 융의 확장된 개념의 리비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로써 그들은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가장 달랐던 융의 입장은 인간이 무의식의 잠재력과 관계성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인적 인격에 다다를 수 있다는 신념에 있었습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정신구조는 유아기에 형성되어 그 구조 내에서 정신병리적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 분석을 통한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호전될 수는 있지만 그 정신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기에 융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융 심리학의 핵심이자 융이 이후의 심리학에 미친 영향에서 중요한 지점입니다.
융에게 인간의 무의식은 억압된 것이 뛰쳐나오려고 꿈틀대는 욕망의 지하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끌어가는 잠재적 힘이었고, 융은 우리의 무의식 안에는 집단의 무의식이 투영된 하나의 원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 전인적 존재이며 우리 삶은 그 통합된 원형을 발현시키는 과정입니다.
융은 인간의 정신이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불과할 정도로 융에게 무의식은 인간의 거대한 잠재력의 공간이었습니다. 융이 이토록 무의식의 에너지를 크게 바라보는 것은 목사였던 아버지와 병약한 탓에 그를 거의 돌보지 못한 어머니 사이에서 늘 혼자 지내며 몽상에 젖어 있던 고독한 유년의 성장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된 채 그는 유년기부터 자신의 꿈이나 환상 같은 내부 세계에서 지냈습니다. 늘 인간의 내부에 몰입했던 그는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25세에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신병원 중 하나였던 스위스 취리히의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수련의가 되었습니다. 30세에는 취리히 의과대학의 임상과장으로 강의를 겸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후 부유한 집안의 상속녀와 결혼했으며 1948년 융연구소를 설립하게 됩니다.
고립된 외로움을 내면의 환상으로 채웠던 작은 아이는 언뜻 순탄대로 속에 저명한 세계적 학자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융은 생애 내내 늘 삶 속에서 환상과 악몽, 우연적 암시를 경험했으며 정신분열과 망상적 정신질환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리어 연구의 재료로 삼았습니다. 즉 융의 무의식의 신화는 그 자신이었습니다. 융은 분석 현장에서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적 전이 현상에 대해 치료에 필연적인 소통이며 그로 인해 환자도 분석가도 함께 교감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했으나, 치료 현장의 분석가와 환자 사이의 감정적 전이에 대해서는 당시나 지금이나 부정적 견해가 있었습니다. 환자와 분석가가 서로 공감이 깊어지면 그 에너지가 치료와 방향이 다른 이성 간의 호감으로 발전하게 되거나 환자가 분석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객관적 인식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험할 수 있는 전이에 대해 융이 그 필요성을 고수한 것은 그가 주장한 ‘집단 무의식’에 대한 신념과 부합합니다. 융은 인류 모두가 보편적으로 집단 무의식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동서양이 전혀 교류가 없던 시대에도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동양과 서양 양쪽 민족의 관념 속에 있었던 것이나 각각의 민족들이 표현하는 상징의 문양, 무심코 하는 낙서의 도형이 서로 비슷한 것 등을 융은 인류의 ‘정신적 원형’이라고 부르며 그것들을 인류가 공통으로 소유한 무의식이라고 보았습니다. 가장 내밀한 부분에서 우리 모두는 동일한 체계 속에서 서로 관련을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이 같은 차원으로 바라본다면 세계 내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연결된 감각을 고양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필수적인 것이기에 융은 인간이 반드시 이것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융은 개인이 이 과업을 이루는데 있어 경계해야 할 모습들을 그만의 용어로 페르소나 persona, 그림자 shadow, 아니마 anima와 아니무스 animus로 개념화했습니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세상과 관계하는 사회적 역할에 의한 가면입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역할에 따른 각각 다른 가면을 쓰게 됩니다. 상황에 따라 누구나 페르소나를 필요로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가면’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면 그의 의식은 자신의 본질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림자란 감추고 싶은 부정적 측면을 무의식의 세계로 억압함으로써 내면에 형성된 자신의 이중적인 면입니다. 그림자는 자신의 내부에 감춰져 있으나 때로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혐오감이나 적대감이 드는 것은 대부분 스스로 숨겨온 면을 상대에게서 보기 때문이라고 융은 설명합니다. 나의 그림자를 들키는 것이 두려워 오히려 상대에게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내부에서 벗어나 스스로 의식화될 때 저희는 이것을 자신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자 하는 동기로 치환해 자신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신화와 상징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융은 여성의 무의식 속에는 아니무스가 있고, 남성에게는 아니마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니무스는 남성적 심리구조로 강인함, 힘, 야성의 상징이고 아니마는 자애롭고 따뜻한 돌봄을 상징하는 여성적 심리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구조는 남성에게 여성적인 아니마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여성에게는 남성적인 아니무스를 표현하면 안 되도록 억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각각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잘 계발할 수 있다면 상대의 성을 더 이해하고 자신 안에서 전인적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융의 개념들은 모두 하나의 형태 안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극단으로 나뉜 두 가지 성질이 공존하고 있음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그가 말하는 부정성이란 공존한다는 것을 담아내지 않고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입니다. 융에 의하면 성숙한 인격이란 자신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다 인정하고 담아내는 것입니다. 진정한 남성성은 여리고 섬세한 감정까지 드러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진정한 여성성은 적극적이고 용감한 투지를 실현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의 측면에 고착시키지 않고 여러 측면으로 다 계발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자신 안에 갈등이 없는 통합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융은 이것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칭했습니다.
개성화는 인간이 여러 가지 정신적 요소들을 통합하는 정신 작용으로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페르소나와 아니마(또는 아니무스) 등 서로 대립적 관계인 정신적 요소들이 균형을 갖게 된 상태입니다. 융은 우리가 모두 개성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내부에 치우친 자신의 중심을 잡아주는 조절 기능인 ‘자기 원형’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융의 분석심리학의 핵심은 바로 내면의 통합 능력을 이루는 것이고 분석을 통해 인간은 모두 통합된 상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MBTI 테스트가 인기입니다. 포털사이트에 연예인 이름을 치면 프로필 옆에 MBTI 유형이 적혀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와 같은 MBTI 유형이면 친밀감이 더욱 치솟고 전혀 다른 유형이면 다른 것에 주목해 성향 이해의 폭을 넓혀갑니다. 이 MBTI의 틀을 개발한 사람이 바로 융입니다. 그런데 융이 MBTI 진단 틀을 개발할 당시의 취지와 현재 MBTI 유형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다른 듯합니다. 융의 취지는 각 사람의 특성에 주목해 그 특성으로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에너지의 균형을 찾아 스스로 통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MBTI 유형 분석뿐 아니라 사실 모든 성향 테스트가 지닌 의의는 인격의 성숙을 위해 부족한 것을 통합하라는 메시지인데,
요즘은 오히려 치우친 부분을 밝혀내고 그것을 강조해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재미로 해보는 테스트겠지만 MBTI에는 우리가 모두 연결된 무의식 속에서 서로 성숙해나가는 관계이며 상대를 통해 자신의 치우친 면을 돌아보고 비어 있는 면을 함께 완성시키라는 융의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방 정리
-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1875~1961)은 우리 안에는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전 세대들이 축적해놓은 정서적 유산이 내재해 있다고 말합니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가장 달랐던 융의 입장은 인간이 무의식의 잠재력과 관계성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인적 인격에 다다를 수 있다는 신념에 있었습니다.
- 융에 의하면 성숙한 인격이란 자신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다 인정하고 담아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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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을 알려드렸습니다. 모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정보도 궁금하시다면 위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